
곡성과 사바하를 처음 봤을 때 솔직히 좀 당황스러웠습니다. 엑소시스트 같은 할리우드 오컬트 영화에 익숙했던 저로서는 무당과 굿판이 등장하는 장면이 낯설면서도 묘하게 끌렸거든요. 영화를 다 보고 나서 든 생각은 "이게 정말 오컬트 영화가 맞나?" 하는 의문이었습니다. 선과 악이 명확하게 구분되지 않고, 끝까지 누가 진짜 악인지 헷갈리게 만드는 구조가 기존 서양 오컬트와는 확실히 달랐습니다.
한국형 오컬트는 왜 다를까
할리우드 오컬트 영화는 대부분 공식이 정해져 있습니다. 누군가 악령에 빙의되고, 신부나 엑소시스트가 등장해서 퇴마 의식을 진행하고, 결국 악을 물리치는 구조죠. 엑소시스트나 오멘 같은 영화들이 전형적인 예시입니다.
그런데 곡성과 사바하는 이 공식을 따르는 듯하다가 중간부터 완전히 틀어버립니다. 곡성에서는 외지인, 일광, 무명이라는 세 인물이 등장하는데 끝까지 누가 선이고 누가 악인지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습니다. 제가 영화를 보면서 가장 답답했던 부분이 바로 이거였습니다. 주인공 종구는 계속해서 잘못된 선택을 하고, 결국 딸을 구하지 못하는 비극으로 끝나거든요.
사바하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쌍둥이 중 누가 진짜 악마의 자식인지, 김제석이 정말 미륵인지 사기꾼인지, 영화는 끝까지 명확한 답을 주지 않습니다. 일반적으로 오컬트 영화는 선악 구도가 뚜렷하다고 알려져 있지만, 제 경험상 한국형 오컬트는 오히려 그 경계를 흐리게 만드는 데 집중하는 것 같습니다.
이런 차이가 생긴 이유는 한국 공포영화의 전통 때문입니다. 한국 공포영화는 원래 억울하게 죽은 여귀가 복수하는 구조였습니다. 월화의 공동묘지나 전설의 고향 같은 작품들이 대표적이죠. 여기서 중요한 건 귀신에게도 사연이 있다는 점입니다. 단순히 악한 존재가 아니라 억울함과 한을 품은 존재로 그려집니다.
무속신앙이 만드는 독특한 분위기
곡성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일광과 외지인이 동시에 굿을 하는 신명나는 대결 장면입니다. 한국 전통 굿판의 장구와 북 소리, 무당의 춤이 서양의 퇴마 의식과는 완전히 다른 에너지를 만들어냅니다.
한국 무속신앙에서는 빙의를 단순히 악령이 들린 것으로만 보지 않습니다. 초월적 의식 세계를 경험하는 상태로도 해석됩니다. 사바하에서 사천지왕이라 불리는 네 명의 청년들이 김제석을 맹신하며 저지르는 악행도 일종의 빙의 상태로 볼 수 있습니다. 잘못된 믿음에 사로잡힌 것이죠.
저는 이 부분이 서양 오컬트와 가장 큰 차이점이라고 봅니다. 서양 오컬트는 악마와 신의 대결 구도가 명확하지만, 한국형 오컬트는 믿음 그 자체의 위험성을 다룹니다. 곡성의 종구는 확신이 없어서 망하고, 사바하의 사천지왕은 확신이 너무 강해서 망합니다.
무속신앙의 또 다른 특징은 부정을 타는 것에 대한 금기입니다. 곡성에서 빙의된 인물들이 외지인과 부정한 관계를 맺은 후 증상이 나타나는 설정은 이런 무속적 금기를 반영한 것으로 보입니다. 실제로 무당이 굿을 할 때 가장 피해야 할 것 중 하나가 성관계입니다.
확증편향에 빠진 인물들
두 영화를 보면서 제가 가장 흥미롭게 본 부분은 등장인물들이 모두 자기 확신에 갇혀 있다는 점입니다. 곡성의 종구는 외지인이 범인이라고 확신하고, 일광은 무명이 악귀라고 확신하고, 무명은 외지인이 악마라고 확신합니다. 셋 다 자기가 본 증거만 믿고 다른 가능성은 배제합니다.
심리학에서 말하는 확증편향이 딱 이런 겁니다. 자기가 믿고 싶은 것만 믿고, 그에 맞는 증거만 수집하는 거죠. 사바하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박웅제는 처음에 금화를 악마의 자식이라고 확신하지만, 나중에 보니 진짜 악마는 따로 있었습니다.
저는 이 영화들을 보면서 현실에서도 이런 일이 자주 일어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도 모르게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게 되는 거죠. 특히 요즘처럼 가짜뉴스와 진짜뉴스를 구분하기 어려운 시대에는 더욱 그렇습니다.
영화 속 도상들도 이런 확증편향을 강화합니다. 곡성에서 외지인의 집에서 발견된 사진들, 닭장에 매달린 닭, 하얀 옷을 입은 무명 같은 이미지들은 관객에게도 선입견을 심어줍니다. 서양 오컬트 영화에서 십자가나 성경이 선을 상징하듯, 한국형 오컬트에서는 무속의 도구들이 그 역할을 합니다. 하지만 이 도구들조차 누가 사용하느냐에 따라 선이 될 수도, 악이 될 수도 있다는 게 흥미로운 지점입니다.
두 영화를 보고 나니 한국에서도 이제 오컬트 장르가 자리를 잡아가는 것 같습니다. 예전에는 서양 오컬트를 그대로 베낀 듯한 영화들이 대부분이었는데, 이제는 한국만의 색깔을 입힌 작품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다만 이런 영화들이 자칫 잘못하면 무속신앙이나 종교를 맹신하게 만드는 위험도 있어 보입니다. 영화는 영화일 뿐이고, 현실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건 결국 이성과 과학이라는 걸 기억해야 할 것 같습니다. 곡성과 사바하가 던지는 진짜 메시지는 맹목적인 믿음의 위험성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