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대 한국과 일본 사회에서 가족의 의미는 과거와 크게 달라지고 있습니다. 1997년 한국의 경제위기와 1990년대 일본의 버블 붕괴 이후 가족 구조와 관계는 급격한 변화를 겪었습니다. 영화라는 매체는 이러한 사회 변동을 민감하게 포착하여 재현해냅니다. 본 글에서는 2000년대 이후 제작된 한국과 일본 영화 속 가족의 모습을 비교 분석하여, 가족 해체와 재구성, 가부장제의 약화, 그리고 새롭게 등장하는 비혈연 가족 형태를 살펴봅니다.
정상가족의 해체와 새로운 가족 재구성
한국 영화 <가족의 탄생>(2006)과 일본 영화 <바닷마을 다이어리>(2015)는 전통적 정상가족 모델이 붕괴되고 새로운 형태의 가족이 탄생하는 과정을 섬세하게 그려냅니다. <가족의 탄생>에서는 무책임한 남성 형철이 누나 미라와 나이 많은 아내 무신을 한 집에 모이게 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형철은 결국 가족을 버리고 떠나지만, 남겨진 미라와 무신, 그리고 무신의 전남편의 전부인의 딸 채현은 혈연관계 없이도 진정한 가족이 됩니다. <바닷마을 다이어리>에서는 아버지의 외도로 버려진 세 자매가 아버지의 장례식에서 이복동생 스즈를 만나 함께 살기로 결심합니다. 계절의 변화와 함께 네 자매는 매실주를 담그고 카레를 만들며 서서히 한 가족이 되어갑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목욕물을 공유하고 같은 음식을 먹는 행위를 통해 비혈연 가족이 결속되는 과정을 시각적으로 표현합니다. 한국 영화 <고령화 가족>(2013)은 자궁가족의 전형을 보여줍니다. 69세 어머니는 패러사이트 싱글이 된 자녀들을 위해 끊임없이 삼겹살을 구워주며 희생적 모성을 실천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자신의 주체성을 잃지 않고 새로운 파트너를 선택하는 모습도 보여줍니다. 이는 전통적 모성 이데올로기와 현대 여성의 자기결정권이 공존하는 복잡한 양상을 드러냅니다. 세 영화 모두에서 가족 재구성의 핵심 요소는 '공간의 공유', '같은 경험', '너그러움'입니다. 혈연이라는 생물학적 연결보다 시간과 공간을 함께하며 쌓아온 정서적 유대가 진정한 가족을 만든다는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다이애너 기틴스가 지적했듯 "가족과 같은 것은 없다"는 말은 곧 가족의 형태가 무한히 다양할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영화들은 이러한 다양성을 긍정하며 새로운 가족 모델을 제시합니다.
| 영화 | 가족 구성 | 재구성 계기 | 핵심 가치 |
|---|---|---|---|
| 가족의 탄생 | 미라+무신+채현 | 남성의 무책임과 부재 | 너그러움과 정 |
| 바닷마을 다이어리 | 세 자매+이복동생 스즈 | 부모의 불륜과 가출 | 음식과 공간 공유 |
| 고령화 가족 | 어머니+성인 자녀들 | 경제적 어려움 | 희생적 모성과 자기결정권 |
가부장제의 약화와 남성성의 위기
<만찬>(2014)과 <동경가족>(2013)은 경제력을 상실한 가부장의 몰락을 정면으로 다룹니다. <만찬>에서 아버지는 경제력을 잃은 채 가족회의에서도 한마디 못하는 존재로 전락합니다. 대신 장남 인철이 가부장의 역할을 떠안지만, 그 역시 실직 상태를 숨기며 가족의 모든 문제를 혼자 해결하려다 더 큰 불행을 초래합니다. 영화는 "사람은 어려울수록 잘 먹어야 한다"는 어머니의 삼겹살 식탁 장면을 통해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 질문합니다. <동경가족>에서 히라야마 노부부는 자식들이 있는 도쿄로 상경하지만 환영받지 못합니다. 장남 코이치는 병원 일에 바쁘고, 장녀 시게코는 미장원 운영으로 부모님을 돌볼 여유가 없습니다. 결국 노부부는 호텔로 쫓겨나다시피 하며, 슈키치는 "도쿄는 두 번 다시 가지 않는다"고 선언합니다. 니시카와 유코의 연구에 따르면 근대 일본 주택의 '나가로가가타 주택(중간 복도형)' 구조는 가부장의 사생활과 가족 교류를 보장했습니다. 하지만 현대 도쿄의 좁은 주거 공간에서는 가부장의 개인 공간조차 확보되지 않습니다. 한국과 일본의 차이는 '효' 개념에서 극명하게 드러납니다. <만찬>의 장남 인철은 유교적 효 관념에 따라 부모 부양을 자신의 의무로 받아들이며 모든 책임을 떠안습니다. 반면 <동경가족>의 장남 코이치는 부모에 대한 의무감보다 자신의 핵가족과 직업을 우선시합니다. 이는 일본 메이지시대 이후 '효'가 천황에 대한 '충'으로 확장되었다가 전후 약화된 역사적 배경과 관련됩니다. <바람난 가족>(2003)은 가부장제 붕괴를 가장 극단적으로 보여줍니다.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은 아버지가 피를 토하는 장면은 가부장제의 해독 기능 상실을 상징합니다. 변호사 영작은 겉으로는 사회정의를 추구하지만 사적 영역에서는 무책임하고 미성숙한 남성입니다. 반면 며느리 호정은 입양한 아들의 죽음 이후 불륜으로 임신한 아이를 홀로 키우기로 결정하며 주체적 여성상을 완성합니다. 영화는 "삼겹살"이라는 국민음식을 통해 소통과 정을 강조하면서도, 동시에 그러한 가족주의가 여성에게 강요한 희생을 고발합니다.
| 영화 | 가부장 상태 | 장남 역할 | 가족 대응 |
|---|---|---|---|
| 만찬 | 경제력 상실, 발언권 없음 | 가부장 역할 승계, 과도한 책임감 | 가족주의적 결속 |
| 동경가족 | 존재하나 공간 없음 | 핵가족 우선, 의무적 효도 | 개인주의적 분리 |
| 바람난 가족 | 시한부, 토혈로 상징적 몰락 | 미성숙, 무책임 | 여성 중심 재편 |
비혈연 가족과 미래 주거 형태
<걸어도 걸어도>(2008)는 장남의 죽음 이후 가족의 심리적 해체를 섬세하게 그립니다. 어머니 도시코는 15년 전 물에 빠진 소년을 구하다 죽은 장남 준페이를 잊지 못합니다. 살아남은 차남 료타는 아버지와 어머니 모두에게 인정받지 못하며, 가족 모임조차 버거워합니다. 고레에다 감독은 목욕 장면을 통해 가족 관계를 시각화합니다. 료타와 재혼 아내의 아들 아쯔시가 함께 목욕하며 "부자가 되는 법"을 연습하는 장면은 비혈연 관계가 진정한 부자 관계로 발전하는 순간을 포착합니다. 일본 영화에서 목욕은 단순한 일상 행위를 넘어 친밀성과 가족 결속의 상징입니다. 이토 히로노리의 연구에 따르면 고레에다 영화 11편 중 10편에 목욕 장면이 등장하며, 이는 "목욕물을 공유함으로써 가족이 되어간다"는 감독의 일관된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반면 한국 영화에서는 "한 이불을 덮는" 행위가 가족의 상징으로 기능합니다. <고령화 가족>에서 비혈연인 줄 모르던 인모와 한모가 한 이불 속에서 자는 장면은 둘이 이미 가족이었음을 암시합니다. 음식 문화도 한일 가족의 차이를 드러냅니다. 한국의 삼겹살은 여러 명이 함께 구워 먹으며 소통하는 음식입니다. <고령화 가족>에서 어머니는 끊임없이 삼겹살을 구워 자식들에게 제공하며, 이는 희생적 모성의 상징이자 가족 결속의 매개체입니다. 반면 일본의 카레는 각자의 접시에 담겨 나오지만 그 맛을 공유합니다. <바닷마을 다이어리>에서 스즈가 고다 집 카레에 치즈를 넣어 새로운 맛을 만들어내는 장면은 비혈연 가족원이 기존 가족에 통합되는 과정을 은유합니다. 이러한 영화 속 가족 형태는 현실의 '셰어하우스' 문화와 맞닿아 있습니다. 일본에서는 '이에(家)' 제도의 역사적 경험 때문에 비혈연 가구가 낯설지 않으며, 2011년 동일본대지진 이후 가족 유대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함께 평생형 셰어하우스가 등장했습니다. 야마다 마사히로는 가족을 만들지 못하는 사람들, 가족이 있어도 없는 것과 같은 사람들을 위한 대안으로 셰어하우스를 제시합니다. 미야하라의 연구에 따르면 일본의 '홈 셰어'는 단순한 공간 공유를 넘어 심리적 안정과 보안 의식을 제공하는 '유사가족' 기능을 합니다. 한국에서도 2010년대 이후 대학생과 사회초년생을 중심으로 셰어하우스 붐이 일어났습니다. 하지만 아직 단기적 비용 절감 수단으로 인식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일본의 사례를 참고한다면, 셰어하우스는 단순한 주거 형태를 넘어 복지 기능이 약화된 사회에서 사회적 약자를 위한 대안 공동체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구보다 히로유키가 지적했듯, 셰어하우스는 "가족과 타인의 경계를 넘는 생활 방식"으로서 미래 가족의 한 형태가 될 수 있습니다. 한국과 일본 영화가 공통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혈연 중심 가족의 한계와 새로운 가족 형태의 가능성입니다. 정상가족 이데올로기가 강요하는 희생과 억압에서 벗어나, 개인의 선택과 정서적 유대에 기반한 가족 만들기가 가능하다는 메시지입니다. 다만 한국은 여전히 유교적 효 관념과 혈연 중심주의가 강하게 작동하는 반면, 일본은 개인주의가 더 진전되어 가족의 심리적 해체가 더 깊이 진행되었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 [출처] Nishiyama, China, "영화 분석을 통한 한국과 일본 가족 비교 연구 - 학위논문(박사) -- 이화여자대학교 국제대학원 , 한국학과 , 2019. 2. 졸업 https://www.riss.kr/search/detail/DetailView.do?p_mat_type=be54d9b8bc7cdb09&control_no=e6104ba2df9fcf6bffe0bdc3ef48d419&keyword=%EC%98%81%ED%99%94